내가 시가키 시게마사 목사님을 처음 만났을 때는 일본에서 펀드운영회사를 경영하는 사장님이셨다. 그래서 선교사역을 사업적 관점에서 보아, 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 향하는 복음전파 사업이라 볼 수 있었던 것도 비즈니스 맥락으로 보는 시각이 있었던 것이다.
제국주의가 선교를 부추긴 사실도 부정할 수 없는 노릇이고 실제로 가치관의 강요이기도 한 것이며, 후진국의 국민은 선진국의 조언을 따라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인식이 기저에 깔려 있어 선교를 활발히 펼쳐온 나라가 모두 선진국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실제로 펀드운영회사는 극히 일부분이었고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님과 함께 전 세계를 누비며 선교사역을 하던 동역자이면서 산증인인 장로님이셨다. 일본인이면서 한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뿐만 아니라 영어 역시 모국어 수준이다.
시가키 목사님은 한국의 고려대를 졸업하고, 일본 순복음대학 대학원과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DCEM(David Cho Evangelistic Mission) 사무총장, CGI(Church Growth International) Board Member, FULL GOSPEL BIBLE COLLEGE 이사장, 순복음일본총회 이사장을 지냈다. 조용기 목사님과 함께 세계 선교사로 38년 이상 동행하였고, 현재는 순복음동경교회 담임목사로 헌신 중이다.
전 세계를 다닐 때 브라질에서 150만 명, 인도에서는 200만 명이 운집하였고, 유럽이나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도 1만 명이 넘는 백인들이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모여들었다는 것은 정말 기적 같은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런 자리에 시가키 목사님이 늘 동행하여 조 목사님의 설교를 통역했던 것이다. 선교를 위해 다녀온 곳이 자그마치 70개국 350개 도시라니 정말 대단하다.
시가키 목사님은 사실 어릴 때 성당을 다닌 경험이 있지만 점점 더 멀어져갔고 급기야는 아예 발을 끊기도 했었단다. 그런 목사님이 우연찮은 기회로 그 당시 당연하다고 여기던 미국이나 유럽으로의 유학이 아닌 한국을 택하게 되는 기이한 행보가 시작된 것이다.
한국에서 대학생이 된 목사님이 친구들의 미팅에 대신 참석하게 되면서 지금의 사모님을 만났다고 한다. 그 운명적인 만남을 시작으로 조용기 목사님과도 인연의 끈이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 공부보다는 사모님과 데이트한 기억만 있을 정도로 4년간 한국에서의 유학생활 중 단 한 번도 교회에 가본 적이 없었단다.
결혼하고 일본으로 귀국 후에조차도 처음에는 순복음동경교회에 다니던 사모님을 따라서 교회에 들어가서 예배는 드리지 않았단다. 사모님이 쌍둥이를 출산하면서 상황이 바뀌어 어쩔 수 없이 사모님을 교회에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는 동행이 시작될 때만 해도 크리스천이 될 것이란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단다. 그런 첫 교회 출석이 예배시간에 늦게 되었고, 출입구가 앞쪽으로 하나여서 되돌아 나올 수도 없이 예배를 함께 드려야 했던 기막힌 사연이 목사님 신앙생활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우연히 일본으로 파송된 선교사님의 통역을 하게 되었는데 그로부터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인연이 되었고, 엉뚱하게도 금요 철야기도 시간에 조용기 목사님과 함께 전 세계 선교사역을 하겠다는 서원기도를 했단다. 서원기도는 반드시 이루어지는 모양이다. 그 당시 담임목사님조차도 1년에 한 번 직접 볼까 말까 한 조 목사님과 함께 선교사역을 한다고 했으니 누가 들어도 정말 웃기는 이야기였다.
신앙생활에서도 꿈(서원기도)이 있으면 이루어진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주신 시가키 목사님이 늘 존경스럽고 본받고 싶다. 지금도 일본 일정에서 주일이 겹치면 꼭 순복음동경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이유다.
정희순(이랜드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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